오도바스 1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스라엘 남부 아브다트에 지어진 오도바스 1세의 신전
목차
1. 개요2. 치세
2.1. vs 하스몬 왕조2.2. vs 셀레우코스 왕조
3. 사후

1. 개요 [편집]

아랍어 عبيدة (우바이다)

나바테아 왕국의 3대 군주. (재위 기원전 96 ~ 85년). 부왕 아레타스 1세를 계승하였으며 당시 나바테아를 위협하던 유대계 국가인 하스몬 왕조와의 전쟁 역시 이어받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하스몬 왕조의 종주국인 셀레우코스 왕조마저 격퇴하며 나바테아의 자주 독립을 수호하였다. 사망한 후 나바테아 인들은 그를 신으로 숭배하였다. 오도바스 1세의 치세에 나바테아는 현재의 요르단 일대를 석권하고 다마스쿠스까지 점령할 만큼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2. 치세 [편집]

2.1. vs 하스몬 왕조 [편집]

하스몬 왕조는 기원전 100년 나바테아 인들의 대유럽 수출항이던 가자를 점령한 후 요단 강을 따라 에돔, 모압 왕국을 정복하였다. 이에 나바테아는 큰 위협을 받았고, 기원전 95년 경부터 하스몬 왕조와 대립하였다. 그러던 기원전 93년에 오도바스 1세는 가나안과 요르단을 잇는 요충지인 갈릴리 호수 동쪽 야르무크 계곡[1]에 매복한 후 그곳을 지나는 유대 군대를 기습하였다. 하스몬 왕조의 국왕 알렉산드로스 야네이[2]가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주하였을만큼 결과는 나바테아의 대승이었다. 승리 이후 야네이는 예루살렘 내 자신의 반대파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대가로 에돔 ~ 모압의 영토를 오도바스 1세에게 할양하였다. 이로써 나바테아는 현재 요르단 일대를 장악하며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2.2. vs 셀레우코스 왕조 [편집]

당시 시리아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12세는 신흥 강자로 떠오른 나바테아의 기세를 꺾기 위해 침공해 왔다. 기원전 84년, 안티오코스 12세는 나바테아를 기습하기 위해 요단 강이 아닌 사해를 따라 남하하였다. 하지만 이를 간파한 오도바스 1세는 역으로 그를 기습하였고, 혼전이 이어지던 중 안티오코스 12세가 전사하였다. 이에 혼란에 빠진 시리아 군대는 무질서하게 도주하였고, 대부분 광야에서 떠돌다가 죽었다. (카나 전투) 이후 나바테아 군대는 북진하여 다마스쿠스를 약탈하고 의기양양하게 회군하였다.

3. 사후 [편집]

카나 전투 이듬해인 기원전 85년, 오도바스 1세는 사망하였다. 그는 현재 이스라엘 남부의 네게브 사막에 묻혔는데, 사후 신격화 되며 무덤 일대는 아브다트라는 칭호와 함께 신전이 세워졌다. 뒤를 이은 동생 아레타스 3세는 하스몬 왕조의 내분에 개입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할만큼 전성기를 이어나갔으나 기원전 62년 로마에게 복속되었다.
[1] 700여년 후 야르무크 전투의 현장[2] 자신에 반대한 바리새 파 7천여명을 십자가형 등의 방법으로 처형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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